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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자살률이 크게 급증하는 세상이다. 하루 열 명꼴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만큼 노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고독감. 가난도 병도 모두 이겨낼 수 있지만 외로움만큼은 젊은 사람도 견뎌낼 수 없는 것. ‘발 사랑회’는 그토록 외로움으로 가득 찬 발을 만지러 다닌다. 흘러간 옛 가요를 틀어놓고 노인들의 발을 마사지하는 동안, 말벗이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표정이 어두웠던 노인들도 금새 아이처럼 웃는다. 그들은 단순하게 발을 만져서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만져주는 ‘마음 마사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들어가는 꽃에 기를 불어넣어 살려내는 마술사처럼 노인들의 발에 웃음꽃을 피우는 ‘발 사랑회’는 말한다. 누구든 서로의 발을 만져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살만 할 것이라고. 어둠 속에 놓여진 발을 껴안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배운다.
일단 치매 노인들이다 보니 본인들이 인지를 못해서 발의 위생 상태가 안 좋다. 그 발을 일단 소독약으로 닦고 마사지 크림을 바르는 일부터 해야 한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분들의 발 냄새가 몸에 배는 느낌이었다. 손을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나는데, 불쾌감 보다는 냄새를 맡을 때마다 안쓰러움이 울컥거려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전에 어떤 노인은 발톱을 오래 못 깎아서 살을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분들은 발톱도 깎아드려야 한다. 치매가 중증인 노인들은 발작 증세를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땐 많이 힘들지만, 발을 만져드려서 다시 평온을 찾을 땐 함께 기뻐진다.

노인들의 발을 만져드리다 보면 그분이 얼마나 힘든지 느낄 수 있다. 발 상태를 보면 몸 상태를 알 수 있고 마음상태까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렇지만 오래 병에 시달린 분들은 자녀들과 따뜻한 대화가 없는 고독한 상태다. 가족들도 처음엔 걱정하고 속상해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늘 따뜻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면 노인들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러니 우리가 가서 잠시만 대화를 해도 즐거워하실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발마사지보다는 말벗이 되어드리러 간다고 볼 수도 있다.
간혹 발 만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발을 만지려고 하면 소리 지르고 욕 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겨우 겨우 발을 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다소곳해지고 나중엔 순한 양이 됐다. 그분이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로 치매가 심했는데, 어느 날 봉사하러 갔더니 우리를 알아보곤 먼저 양말을 벗고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질 않는다.

모든 사람이 스스럼없이 남의 발을 만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반가움의 표시로 악수를 하는데, 손은 즐거움과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오늘 악수하던 손이 내일은 손가락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은 진실하다. 남의 발을 거리낌 없이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발을 스스럼없이 내밀 수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거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내밀고 만지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행위다. 그런 화해의 세상을 바란다. 특히 요즘엔, 여자들이 아이와 남편의 발을 만져주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말을 만져줄 수 있다면 행복한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글,사진|정 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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