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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e아름다운세상 > 원전 문화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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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경주는 불국토 세상이었다. ‘절은 별처럼 많았고, 탑은 기러기처럼 이어졌다’는 옛 책의 기록 그대로다.
석굴암 대불의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첨성대의 지혜로 밝은 땅, 경주. 그 반월성 허리 휘돌아들면 향가 한 가락
들려오는 듯하다.
경주를 찾아가는 시간은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듯, 일상을 슬쩍 비켜나 잊혀진 것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길에 들어서면 길모퉁이마다 골목길 끝마다 역사의
흔적이니 노천박물관이 따로 없다. 유네스코가 경주를 세계 10대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은 당연하다. 나라에서
지정한 문화재만 해도 국보 27점, 보물 68점, 사적 70곳, 중요민속자료 176점에 경주권의 고분은 무려
676기에 이른다. 경주에서는 발끝에 걸리는 것들은 모두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 하나, 흙 한 줌도
경주에선 허투루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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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 20단과 25, 26단의 두 곳에 각각 남북·동서로 2개씩
큰 돌이 걸쳐져 있어 우물정 자 모양이다. 꼭대기에는 관측기구를 설치하고 24절기를 별을 보며 가늠했다고 알려진다.
박물관에서 신라 문화의 찬란함을 만났다면 신라의 설화를 찾아가 보자.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깃들어 있는 계림이다.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65년(탈해왕 9)에 한 신하가 반월성 서쪽마을을 지나가는데, 숲의 나뭇가지에
황금 궤가 걸려 있고 그 옆에서 흰 닭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왕에게 고하였다. 이어 왕이 그 궤를 열어보니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은 하늘이 내려주신 아이라고 크게 기뻐하며 거두어 길렀다. 왕은 아이의 이름을
알지라 하였고,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金)이라 했다. 계림이라는 숲의 이름은 닭이 울었다는데서 연유되었으며
후에 국호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포석정에 다다르면 계림의 신비함도 다 스러지고 천년 신라의 마지막이 보인다. 포석정은 구불구불한 돌 홈을
따라 흘러가는 물 위에 잔을 띄워 술을 마시며 연회를 벌이던 곳이다. 물길을 따라오는 술잔이 자기에게 오기 전에
시를 지으며 놀이판을 벌였으니 통일신라 몰락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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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희일 자유기고가, 사진|서재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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