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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미경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진우 사진가 [2002년 11월 통권 13호]
솔숲 아래'영물'이 숨어 있다
'송이버섯 자리는 아들에게도 안 알려준다'는 말이 있다. 양식이 불가능한 자연산인 데다 특수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극소량의 품종으로서 그 가격이 비싸 비밀이 누설되는 것을 엄히 경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영양이나 풍미의 세련됨만으로도 다른 버섯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춘 송이. 가을은 그러한 송이의 계절이다.


대표적인 송이 산지의 산들에서는 은근하면서도 알싸한 송이 향내가 솔숲을 휘감아 돌고, 온 마을이 송이 채취로 부산해지며 다양한 형태의 송이축제까지 열린다. 울진, 봉화, 양양이 잘 알려진 송이 산지로, 특히 군 단위 생산량으로는 울진이 최고요, 재작년의 경우에는 울진군의 송이버섯 생산량이 강원도 송이버섯 총생산량과 동일했을 정도다.

울진군 내에서도 울진읍, 북면, 서면, 기승면 등이 송이버섯 재배농가로 유명한데, ' 가을철 미각의 절정' 송이를 좇아 부구리에 울진원전을 두고 있는 울진군으로 향했다.

"송이는 영물(靈物)이에요. 생긴 모양새는 보다시피 남자의 성징을 닮았지요? 그런데 향내는 여자 분 냄새를 풍겨요. 게다가 썩으면 또 사람 송장 냄새가 나니, 이게 영물이 아니고 뭡니까? 환경 변화에 어찌나 민감한지, 볕의 양이 많거나 적어도,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와도 고개를 안내밀어요. 또 소나무 밑이라고 다 송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요."

유독 양식이 불가능한 송이버섯

북면 야산의 송이 채취현장으로 안내를 하는 울진군산림조합 김현필 상무의 송이 자랑이다. 송이 값이 워낙 '금값'이라 아무에게나 그 산지를 공개하지 않는 데다, 송이가 머리를 내밀 때는 땅바닥과 거의 비슷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다 자란 귀한 송이를 발로 밟아 해치는 수가 많다. 이래저래 주인들이 다른 사람들이 송이가 자라는 숲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한창 송이 수매와 경매로 바쁜 그이가 동행을 해주었다.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다른 버섯들처럼 인공재배를 할 수가 없는 송이버섯은, 버섯균이 소나무의 가는 뿌리에 붙어살면서 소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공급받고 땅에서 무기양분을 흡수하며 자란다. 그래서인지 북면 마을을 외돌아 송이 산지가 있는 한적한 길에 이르니, 주변 숲이 소나무 천지다. 하지만 김현필 상무의 말처럼, 소나무라고 다 그 뿌리에 송이균을 키워내는 것은 아니다. 송이는 대개 수령 20년 정도 된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데, 너무 어리거나 25년이 넘은 소나무 아래서는 나지 않는다. 또 순수한 한국 소나무로서 솔잎이 유난히 푸르고 윤기를 내는 소나무들만이 그늘 아래 송이를 두고 제 가는 잎을 떨궈 감추어둔다.

잎 푸른 한국 소나무가 키워내는 송이

드디어 출입금지 표지와 함께 흰 금줄이 처진 송이 산. 미리 주의를 받은 터라 솔잎이 쌓이거나 흙이 있는 곳을 피해서 살금살금 밟으며 오르는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개당 몇 만원 하는 송이버섯이 뭉개질 판이다.
"어서 오세요, 올라오느라 힘들었지요? 이 감 좀 드세요."


울진군 북면 상당리 주민이자 이 송이 산의 안주인인 김춘화 씨. 새참거리로 싸온 단감과 함께 건네는 그녀의 미소가 발걸음을 조심하느라 잔뜩 움츠려든 마음을 펴준다. 송이가 나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는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기에, 그 무렵에는 집에서보다 여기서 그녀를 찾는 게 쉽다고. 송이 채취도 채취지만, 무엇보다 송이철이면 극성을 부리는 '도둑님' 때문이란다.

" 요즘은 벌금이 많아져서 좀 덜한데, 그래도 해 뜰 무렵부터 해질 무렵까지는 산을 지켜야 해요. 밥도 도시락을 싸와서 산에서 먹거나 새참거리로 때우지요. 따러 올라왔다 도둑이 다녀가서 송이 팬 자리 흔적만 있으면 정말 속상해요.? 말을 하면서도 나뭇가지를 든 손길이 부산하다. 남들 눈에는 그저 떨어진 솔잎들이 쌓여있는 자리인데도, 그녀가 지렛대 모양으로 나뭇가지를 꽂고 놀리면 영락없이 송이버섯이 올라온다.

그중 크고 탐스러운 놈은 뿌리 부분의 흙을 조심스레 털어 내서 신문지에 싸고, 어중간한 놈은 비닐봉지에 그냥 담는다. 또 7~8센티미터는 돼야 상품이 되므로 아직 어리다 싶은 놈은 습도를 맞추고 갓도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솔잎으로 덮은 뒤, 주인만 알아볼 수 있는 표지를 살짝 해둔다.

" 도둑 걱정만 아니면 참 고마운 농사지요. 비료를 주나, 김매기를 하나… 일년 내 공들이는 저희 집 논농사, 밭농사보다 이 한철 다리 품 수익이 더 높으니까요. 올해도 이 산 물려주신 조상님들 고마워서, 제일 크고 좋은 송이들을 골라 제사상에 올렸어요."

맛의 절정, 입의 호사로 사랑 받는 송이



벌도 치고 논농사와 함께 특수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도 한다는 고목리의 남두호 씨. 울진군 송이생산 자영농조합의 총무이기도 한 그이는 '산만 봐도 송이가 있나 없나 알 수 있다'는 송이 전문가다. 작년에는 다른 농사들과 더불어 송이도 풍작이었는데, 지역에 수해가 컸던 올해에는 그만 못하단다. 그래도 살림 넉넉하고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둔 자식농사만큼은 변함 없이 풍년이어서, 얼굴에 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 저 어릴 때만 해도 송이 귀한 줄을 몰랐어요. 초등학교 갔다오는 길에 따서 나무 꼬챙이에 꿰어 집에 가져오면 어머니가 호박국도 끓여주고 죽도 쒀주곤 했지요. 한 20여 년 전만 해도 1킬로그램에 5천 원 했나? 지금은 10만 원을 호가하는 데다 지난 추석 전에는 상품의 경우 80만 원이 넘었어요."
그러면서 어제 1kg 가격이 159,000원이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송이 단일품목으로만 연 소득 5천만 원 이상을 올리는 농가를 흔히 볼 수 있음이 그 때문이다.

김춘화 씨나 남두호 씨와 같은 송이 산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구간 안 마을 안에서 주민들이 공동 분배하는 형태의 국유림 소유자들도 있다. 이들 생산자로부터 수매한 송이는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산림조합에 모아졌다가 경매를 통해 각지로 뻗어나가는데, 온도 유지를 위한 아이스박스 포장, 습기 제거를 위한 부직포 포장에 얼음팩을 넣어 저장성을 높인다. 이렇게 유통된 송이가 바로 표고, 느타리, 새송이, 양송이, 목이, 팽이 등 종류도 많은 버섯들 위에 군림하며 ?맛의 절정, 입의 호사?로 대접받는 한국산 송이.

" 요즘은 값싼 중국산이 들어와 우리 송이로 둔갑하기도 하는데, 생긴 게 똑같다지만 중국산 송이는 색이 더 노랗고 거무튀튀하며 뿌리 부분이 퍼짐합니다. 무엇보다 향이 우리 송이만큼 안나요. 향만 맡아도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송이는 향으로 먹는다'는 일본사람들이 우리 송이를 최고로 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러면서 '우리 송이 중에서도 울진 송이가 최고'라며 탄탄하게 잘 자란 송이만큼이나 미더운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 보이는 송이 생산자들…. 대개의 작물들은 농부가 씨뿌리고 밭 갈고 물을 대 키우지만, 인공재배를 거부하는 송이버섯은 작물이 오히려 농부를 키운다. 농부가 지닌 부농의 꿈을 키우는 것이다. 참으로 용한 '영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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